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모토 이소로쿠 (문단 편집) === 진주만 공격 === >'''[[져야 하는 전투|나는 이것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질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언|미국과 전쟁을 시작한지 6~12개월간은 승리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이소로쿠의 판단은 정확했다. [[진주만 공습]] 성공에서 부터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참패까지 걸린 기간이 '''7개월'''이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잠자는 거인을 깨워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 나는 두렵다.]]''' 그러나 같이 개전을 반대하던 [[요나이 미쓰마사|요나이]][* 개전을 반대했기에 총리가 되자마자 육군측의 육군대신 사퇴로 내각 붕괴에 대한 위협을 받았고 결국 6개월도 못 갔다. 이후 잠시 은퇴했다가 전쟁 말기 해군대신으로 복귀해 무조건 항복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육군과 끝까지 대립했다.]가 [[일본 내각총리대신|일본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미국과 전쟁을 불사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태도를 180도 바꾸어[* 왜 그랬는지 하면 육군의 협박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전쟁을 한다면 미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인 진주만을 공습해 기선을 제압해야 승리의 가능성이 있음" 을 역설하며 철저한 준비와 훈련에 매달렸다.[* 여기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문서를 참고하면 일본군 육군이 [[중일전쟁|대륙에서의 일]]이 끝나면 해군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2차대전 패전 이후에 [[해군반성회]]에서는 육군의 쿠데타를 우려해서,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우리가 전쟁을 주도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또한 해군 입장에선 지난 십수 년간 대미 결전을 위해선 해군 전력을 증강해야 한다면서 십수 년간 엄청난 예산과 자원을 가져다 썼는데, 이제 와서 미국하고 전쟁 못한다고 하면 해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고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는 외통수에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육군이 전쟁을 압박하자 해군 상층부는 승산이 없는 걸 알면서도 더 호전적으로 돌변하였다.] 관동군처럼 본국의 의사에 반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러일전쟁]] 이후의 대미 전략으로서 [[점감요격작전]]과 [[남방작전]]을 상정해온[* [[미국]]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남방 자원 지역이 목표라고 예측하고 있었기에, [[하와이]]가 공격받는 사태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일본 해군]]의 계획을 뿌리부터 뒤집는 진주만 공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자신의 자리까지 걸며 끝내 관철시킨다. 1941년 12월 7일 개시된 [[진주만 공습]]을 철저한 준비로 대성공을 거두어 [[미국]]의 당시 가용 전력은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었으나, 본래 목적인 미 함대 전력들을 상당수 격침시키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시 유류저장고 등의 기간시설을 제거하지 못함으로서 후일 [[미 해군]]의 재기의 단초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진주만 공습]] 성공 소식을 듣고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은 아닐까?' 라는 말을 했다는데 이것은 영화 <[[도라 도라 도라#s-2|도라 도라 도라]]>의 한 장면이다. [[미국]]의 뺨을 맛깔나게 때린 적군의 탑 포지션이니까 잘 그려준 것.]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주만 공습으로 주력 전함 및 중순양함이 왕창 털린 [[미 해군]]은 이 때의 전훈을 집중적으로 받아들여 현대적인 항모를 전력의 핵심으로 삼는 함대를 찍어내기 시작한다…는데, [[일본]]도 전쟁 전에 항모 건조 계획이 있어서 개장할 배를 미리 만들어두기도 했다. 문제는 생산력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미국은 전함을 포기하고 항모에 올인한 게 아니라, 진주만에서 가라앉은 전함 대부분을 인양해 '''업그레이드해서''' 재투입하고 계획된 전함을 찍어내는 건 계속 하면서 항모를 따로 찍어냈다. 진주만 공습 이후에 그가 [[요미우리 신문]]의 기자와 한 인터뷰는 아주 인상깊다. >요미우리 기자: 자, [[진주만 공습]]이 성공했는데,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미국]]과 싸우실 겁니까?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과의 휴전 조약을 준비할 겁니다.''' 말만 들어보면 곧바로 전쟁을 중단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와이]]를 점령'''하고 이곳을 기점으로 [[파나마 운하]]를 틀어막으면 공업 기반이 동부에 집중돼 있는 [[미국]]으로서는 손을 들 수 밖에 없을 테니 이 때 선심 쓰는 척 조약을 맺으면 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야마구치 다몬]]이 상부에 제출한 계획도 대충 이런 식. 다만 야마구치 다몬의 경우, "조약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점령하는 완전 승리까지 가능하다" 고 믿고 있었다(…).~~[[중일전쟁]]에도 빌빌대는 놈들이 테평양을 건너 중국과 비슷한 크기의 미국을 어떻게 점령한다는 것일까?~~ 이후,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으로 충격에 빠진 대본영의 분위기를 바꾸고, [[미군]]의 잔여 항공모함들을 모조리 격침하기 위해 [[미드웨이 해전|미드웨이 공략]]을 계획하였으나 이미 미군은 [[일본군]]의 [[암호]]를 모조리 해독해 작전 의도를 다 파악한 상태였고, 여기에다 방만한 작전 계획으로 인해 제대간 협동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항모기동부대의 지휘를 맡았던 [[나구모 주이치]]의 뻘짓[* 애초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자신이 [[나구모 주이치]]를 싫어했다. 파벌도 야마모토는 조약파인데 반해 나구모는 함대파이기 때문. 그리고 진주만 공습 때도 야마모토는 항공모함을 노려서 공격하려 했는데, 공습 예정일 당일인 [[1941년]] [[12월 7일]]에 진주만에는 항공모함이 1척도 없다는 보고가 기동함대와 본대에 들어갔음에도 나구모를 중심으로 한 기동함대가 [[하극상|멋대로]] 진주만을 공격한 것이다. 만약이지만, 나구모가 아닌 [[오자와 지사부로]]가 진주만 공습을 맡았으면 항공모함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을지도.]이 겹치면서 '''작전에 동원된 정규 항모 4척[*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이 모두 격침되는 대참사'''를 당했다. 너무 믿기지 않는 지독한 패배라, 사기에 영향을 줄까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반에는 기밀 사항이었다고.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도 전후에야 이걸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미드웨이 해전]] 문서 참고. 한편 미드웨이 해전때 나구모 기동부대의 300해리 후방에 있었던 일로 항모 아카기의 전투기대 대장인 이타야 시게루 소좌에게 '전쟁 구경이라도 할 참인가.'라며 비판당했다. >'''[[도쿄 대공습|목재와 종이로 지어진 일본의 도시들은 쉽게 타버릴 것이다]]. 육군은 허풍을 떨고 있지만 전쟁이 발발해 공습이 일어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길게 갈 필요 없이 [[도쿄 대공습]] 항목에 들어가서 읽어보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해군기들이 충돌해서 해상에 기름이 뿌려졌을 때 물 위에서 기름이 어떻게 타는지 본 적 있는가?''' 이후, 그의 노력은 아무 소용 없이 전황은 악화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